사건과 사고 (프롤로그)
서울 변두리에 살던 나는 언젠가 서울 도심 한복판에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서울역 앞 후암동에 신혼집을 구했다. 도심 한복판 서울역은 어디든 40분 이내로 흘러갈 수 있으며, KTX와 공항철도가 있어 멀리 뻗어 나가는 것이 매력이다. 반대로 고이게도 만든다. 노숙인은 흘러가는 군중 사이 광장, 지하보도, 출구, 공원에 너무나 익숙한 풍경으로 정주해있다. 그러던 어느 이른 새벽 겨울날, 차례를 지내기 위해 부모님의 집으로 가는 서울역 첫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밤새 추위를 떨다가 전철역 안으로 들어온 노숙인 한 분도 전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이 들려왔다. 처음에는 나에게 한 말인지 몰랐지만,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얼떨결에 "선생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대답했다. 그 순간 인식의 ‘접촉사고'가 일어났다. 전철을 타고 집으로 가는 내내 복을 주신 그분의 하루가 궁금해졌다. 그렇게 풍경화에 박제되었던 노숙인은 캔버스를 뚫고 내게 다가왔다. 그 후 서울역에 마주치는 노숙인이 더욱 입체적으로 보였고, 노숙인 관련 다큐가 나오면 채널을 바꾸지 않고 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내가 무얼 해야 할지 몰랐다. 한파가 찾아오면 몇 가지 안 입는 옷을 들고 거리에 노숙인에게 옷을 전달한 것이 전부였다. 활동가도 아니고, 공무원도 아니고, 그저 이웃으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마음으로는 뭔가를 하고 싶지만, 몸은 늘 경직되어 있었다.
서울역 주민 8년차가 되었다. 아이가 생겼고, 유아차는 신체의 일부가 되었다. 유아차의 저속주행은 풍경을 더욱 세심하게 바라보게 한다. 거리의 노숙인 뿐만 아니라 장애인, 쪽방촌 주민, 무료급식소 앞 긴 줄, 길거리 포교 등… 고민만 하고 관찰만 하다가 히스테리안이 기획하는 아르코 공공예술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동료들이 생겼고, 아장스망을 바꿀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사건과 사고의 차이는 사고는 내가 당한 것이고 사건은 내가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접촉 '사고'를 당했으니, 이번에는 내가 접속 '사건'을 만들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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