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안경민물가마우지’입니다. 안경가마우지는 1850년대에 멸종한 새입니다. 러시아의 베링섬에 서식했었으며, 1741년 베링 탐사대의 동물학자 게오르그 스텔러가 발견했어요. 베링 탐사선뿐 만 아니라 코만도르 제도의 난파한 이들이 안경가마우지를 가차 없이 사냥하여 먹었습니다. 보통의 가마우지에 비해 안경가마우지는 날개가 작아 날지 못하는 새였기에 포획하기 더 쉬웠고, 결국 멸종하였습니다. 저는 인간이 알게 모르게 진화하여, 밤섬일대에 숨어사는 ‘안경민물가마우지’입니다. 검색해봐도 이런 종은 없어요. 태어났을 때부터 이상하게도 안경무늬가 제 얼굴에 있더라고요. 날개도 크고, 도시에 적응하고 진화해서 없던 콧구멍이 생겼어요. 먹이를 잘 골라 먹기 위해 혀도 길어졌어요. 그래서 이렇게 여러분과 오늘같이 특별한 날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 말을 이해하는 여러분도 오늘만큼은 특별한 것 같아요. 제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저는 오늘 여러분과 이곳을 산책하며, 그동안의 관찰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밤섬이 끝나는 곳까지 갔다가, 되돌아올 거예요. 갈 때는 저를 따라오시고, 다시 여기에 올 때는 제가 여러분을 따라가요.

저는 원래 360도를 봅니다. 그리고 보고 싶은 것을 볼록하게 만들어 집중해서 볼 수 있어요. 제가 봤던 이야기를 들어보실래요?

아스팔트 아래는 흙입니다. 펜스를, 구멍을 뚫고 나온 '치렁치렁이'들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수면에 닿을락 말락 한 하늘하늘한 줄기들을 바라보세요. 드디어 강과 나무가 닿았어요.

기대도 되고, 들어가도 되어요.

'위험! 들어가지 마세요' 나는 들어갈 수 있어요. 펜스 안팎을 넘나드는 식물을 보세요. 이미 넘어갔어요. '위험! 기대지 마세요라는 간판도 종종 있는데요. 기대지 말고, 들어가면 안 되는 위험한 장소에 기대고 싶어요. 기대도 되고 들어가도 되며 의존해본 적 있어요? 위험하지 않으려면 기대도 되어요. 설마 말그대로 들어가는 건 아니죠? 죽지 마세요. 울지 마세요. 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덩굴은 기댈 곳이 필요할 뿐이에요. 자꾸 보호종과 교란종으로 나누고요., 고유종과 외래종으로 나눠요. 그 사이 우리가 모르는 종은 무한으로 내 옆에 있어요. 울창한 숲은 해가 없어서 덩굴류가 없어요. 생태적으로 좋은 환경으로 바꾸겠다며 풀을 베거나 맨날 뭐 심고, 빼고 하는데요. 그러면 교란종이 더 좋아하는 환경이 되어요. 그냥 두면 어떻게 될까요? 안전은 누구를 위한 안전인가요. 위험은 누구만을 위한 경고인가요.


심호흡을 시작합니다. 눈을 감으세요. 이마 가운데를 의식합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쉽니다. 계속 내 이마 가운데만 의식합니다. 잔생각이 떠올라도 괜찮아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쉽니다. 눈을 뜹니다. 양 손을 책을 보듯 얼굴과 가까이 두고 바라봅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쉽니다. 심호흡을 세 번 합니다. 내 몸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이 펜스를 바라봅니다.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아 안경처럼 만들어 안쪽으로 보세요. 주변이 자꾸 보여도 괜찮아요. 내 이마와 손을 떠나는 게 중요해요. 펜스에 집중하고 시야를 평평하게 만들어보세요. 심호흡을 세 번 합니다. 저 너머 밤섬을 봅니다. 내 이마와 손과 펜스를 떠나 시야를 더 넓게 만들어보세요. 눈이 넓어진다는 기분에 집중하세요. 어떻게요? 잔생각이 떠올라도 괜찮으니 밤섬을 뚫어지게 봅니다. 심호흡을 세 번 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이곳의 시간은 저곳과 다른 속도로 흘러요. 우리는 관리되고 정돈된 구성체. 풀처럼 저도 이 길에 넘치지 않게 잘리곤 해요. 저도 모르게 표지를 따라 천천히, 위험과 금지의 표식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애를 써요. 당신이 만드는 나의 테두리

내가 얽혀 있는 당신의 테두리

1968년, 밤섬의 흙은 여의도 쪽의 홍수를 예방한다며 폭파되었어요. 밤섬의 일부는 여의도 윤중로가 되었어요. 밤섬 너머 보이죠? 나는 밤섬에도 살고, 여기에도 살고, 어디에든 살아요. 눈에 보이는 것 말고 바람, 햇빛, 공기, 먼지, 온갖 것이 내 목구멍 안으로 밀려와요. 사방에서, 한강 너머 저 멀리, 더 멀리에서 스며든 숨을 내뱉어요. 우리는 여기에 있지만, 저기에도 있어요. 이 안에만 있는 게 아니라 얽혀 있어요. 아주 미세한 차이예요. 나, 너, 우리가 여기, 저기, 거기, 아주 멀리까지 얽혀 있다고요. 잎사귀를 살짝 만져보세요. 이 나무는 여기있지만 어디에서 왔을지, 발 밑 아스팔트 아래 흙을 상상해보세요. 어디에 있던 흙인지. 우리가 여기에 모이기 전 각자 살던 동네에서 당신은 분명 무언가를 옮겨왔어요. 거기가 여기고, 여기가 거기였어요.  

자, 이제 여러분은 천천히 걸으며 보고 싶은 것, 보이는 것을 기록해 볼 거예요. 저는 말을 줄일게요. 약 20분만 나와 여기와 밤섬에만 집중해보길 바라요. 다시 보세요. 여러분이 불러오는 존재는 무엇일까요. 있지만 안보였던, 갑자기 새삼스러운 게 있다면 적어주세요. 조금 어려운 분이 있나요? 그러면 그냥 내 눈에 집중해서 보이는 것을 적어주세요. 다른 말도 하고 싶나요? 자유롭게 기록하세요.

저는 어쩌다보니 돌연변이가 되어 이곳저곳 요리조리 잘 피해다니며 인간이 우리를 관찰하듯 저도 매일 인간을 관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밤섬에 사는 민물가마우지는 그렇지 못해요. 먹성이 좋아 강의 물고기를 어마어마하게 먹어치우니 어부들이 골치를 썩는대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원래 우린 철새에요. 인간이 배를 띠우고, 강을 매립하여 땅을 만들기 위해 강의 모래를 파헤쳐 깊게 만들고, 그러다보니 우리가 먹는 물고기들이 늘어나고, 물도 천천히 흐르다보니 당연히 우리가 여기에 터를 잡게 된 거라고요. 텃새가 된 게 우리탓이 아니라는 거죠. 밤섬의 버드나무숲에 우리가 둥지를 짓고, 우리의 배설물이 버드나무를 훼손해서 퇴치해야 하는지 기로에 놓여있다는데요. 보호종이 아닌 종들은 없어져도 되나요. 인간이 조절하고, 관리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당연함에 저는 의문을 품습니다. 원래 밤섬에는 인간이 살았지요. 그러다가 국가의 결정으로 폭파되었고, 밤섬의 흙은 저기 강 건너 여의도가 되거나 도시 곳곳으로 이동했어요. 실향민을 위한 굿이 해마다 열립니다. 밤섬을 향한 그리움을 불러내고, 자신의 안녕을 빕니다. 이럴 땐 인간도 안타깝지 뭐예요. 당신은 보호종인가요, 교란종인가요, 고유종인가요, 외래종인가요.


도시가 만들어 놓은 강의 테두리를 함께 걸었습니다. 강과 밤섬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그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랍니다. 사라져도 될 존재는 없어요. 급격하게 문을 닫고, 문을 열고를 반복해요. 가끔 도시 전체가 우리를 앞지르고, 덮고, 모른 채 하고, 불안하게 만들어요.


오늘이 누군가에게는 어제였고, 또 누군가에게는 오늘이며, 누군가에게는 내일의 시간입니다. 오늘 본 것들이 어제도 있고, 오늘도 있고, 내일도 있기를 바란다면요. 혹은 내일부터 천천히 사라지기를. 혹은 변하기를 바란다면요. 덕분에 제가 여기에 올 수 있었어요. 우리는 오늘 처음 만났지만, 아니요. 이미 오래전 만났어요. 우리는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고 거기에도 있었어요.


심호흡을 시작합니다. 눈을 감으세요. 잔생각이 떠올라도 괜찮으니 밤섬을 뚫어지게 봅니다. 저 너머 밤섬을 봅니다. 눈이 넓어진다는 기분에 집중하세요. 심호흡을 세 번 합니다. 시선을 거둬, 펜스에 집중하고 시야를 평평하게 만들어보세요. 주변이 자꾸 보여도 괜찮아요. 밤섬에서 점점 멀어져 펜스로 눈을 머무르게 해보세요. 심호흡을 세 번 합니다. 자, 이제 펜스에서 멀어집니다. 양 손을 힘껏 끌어 모아 바라보세요. 손을 책을 보듯 얼굴과 가까이 두고 바라봅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쉽니다. 잔생각이 떠올라도 괜찮아요. 심호흡을 세 번 합니다. 나에게만 집중합니다. 이마 가운데를 의식합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쉽니다. 심호흡을 세 번 합니다.